Feb 25, 2011

과테말라에서 콧구멍을 파다가

  


멕시코에 처음 갔을 때 식당에서 콧구멍을 파는 종업원을 보고 밥 맛이 뚝 떨어진 적이 있는데 한달 즘 지난 요즘은 나도 짬짬이 콧구멍을 파준다. 양치질은 하루 세번 식후 30분 이내에, 콧구멍은 하루 세번 주행 후 30분 이내에. 첨엔 나도 코를 파는 사람들을 보고 조낸 더럽다고 생각했는데 먼지도 많고 매연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렇게 된다. 심지어 이쁜 우리 엄마한테 "코파는건 나쁜 어린이에요. 산타 할어버지가 미워해요."라고 꾸준한 관심과 교육을 받아온 나마저.



한 개인의 행동을 주어진 환경을 배제하고 평가하면 우린 타인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혹은 지나치게 관대하게 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멕시코 사람들이 코를 파는 건 타고난 인간성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먼지나 매연이 많아서 이고, 먼지나 매연이 많은건 아직까지 제대로 포장된 도로가 부족하고 돈없으니까 외국에서 타다 버린 중고차를 사와서 타니까 그런거다.

과테말라 꼬마들이 여행객들 붙잡고 돈달라고 삥뜯는건 얘들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배는 고픈데 엄마아빠가 먹을걸 안주기 때문이고, 엄마아빠가 먹을 걸 안주는 건 주고싶은 데 돈벌만한 일자리가 없어서 그런거다.

실리콘 밸리 사람들이 Entrepreneurship이 넘쳐나는 건 이사람들이 한국인보다 간이 커서 후달리지 않고 Risk를 떠안을 수 있거나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신념이 훨씬 강해서가 아니다. 그냥 동네 사람들이 다 그렇고 학교 선후배 다그러고 있고, 하면 투자받고 때돈 벌 확률이 높으니까 별로 잃을게 없어서 그런거다.

결국 너와 나의 행동이란 건 니가 못나고 내가 잘나서 한것이라기 보다는 좀 밋밋하지만 너는 그럴만한 환경이었고 나는 또 그럴만 환경이었으니까 그런 경우가 많다.



인간이 정말 합리적이고 똑똑하다면 그놈의 환경이라는 녀석을 수치화해서 오름차순으로 정리한 다음 그 순위로써 자신의 행복을 평가할 수도 있을테다. "내 삶의 수준이 인류가 향유하는 100가지 생활중에 상위 30%니까 난 70%쯤 행복하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일상의 반경에서 접하는 그 좁은 사회를 자신의 준거집단으로 두고 그안에 갇혀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좋은 대학가려고 공부하는 고딩이나 좋은 회사가려고 취준하는 대딩 기분은 똑같이 더럽다.

거실에서 WIFI 안잡힌다고 투덜대는 한국 꼬마의 기분과 집에 물이 안나와서 샤워하러 8km 떨어진 강가로 걸어가는 온두라스 꼬마의 기분은 똑같이 답답하다.



다양한 삶의 군상을 보고 있으면 때론 사촌이 땅을 산다고 배아파하는게 얼마나 웃긴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40촌쯤 건너가면 중국에서 하루종일 내가 신고 있는 나이키 신발의 나이키 마크를 붙이는 16살 여공도 있을거고, 400촌쯤 건너가면 8년 동안 해먹은 것도 부족해 평생 해먹으려고 헌법을 바꾸고 있는 니카라구아 대통령도 있을거다.

장소가 아닌 시간을 옮겨 준거집단을 바꾸면 더 마음이 너그러워 질수도 있다. 진시황이 돌아와도 내 스마트폰을 보면 부러워할꺼고, 나폴레옹이 돌아와도 내가 위닝하는 걸 보면 한판만 시켜달라고 구걸을 할테다. 28세기의 인류가 잠깐 21세기에 들른다면 내가 랍스터를 먹든 팔보채를 먹든 음식이란 걸 씹고 소화시키는 그 힘든 과정을 한다는 자체로 나를 불쌍하게 여기면서 지들은 캡슐이나 꿀꺽 삼킬 수도 있겠다.

진정한 대인배라면 시공을 넘어 다른 생명체와 나를 견주 볼 수도 있겠다. 그걸 내가 군인 때 알았다면 하루 8시간 근무를 서도 24시간 발가벗고 근무 서는 나무보다 낫다는 생각에 위안 삼았을 것을.




근데 문제는 우리 마음은 조낸 옹졸하고 시야는 조낸 편협해서 그런게 잘 안된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나는 모터싸이클로 대륙을 가로 지르면서 교환학생 가겠다고 레쥬메를 만지작 거리면서 한숨을 쉬고, 과테말라의 주유소에서 일하는 잘생긴 총각은 그래도 든든한 일자리는 잡았으니까 생글생글 웃으면서 기름진 땀을 흘리고 있는 거다.

요즘은 결국 많이 웃는 놈이 인생의 승자라는 생각을 한다. 이쁘게 웃는 놈도, 최후에 웃는 놈도 그냥 마구 즐거워서 계속 웃는 놈한테는 못당한다. 그래서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겨루는 승패라는 개념을 아예 잊어버리는 게 답이라는 생각을 한다.

2006년에 싸이월드에서 봤던 이근호님의 마추피추에서 띄운 함박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 여행이 끝날 때 즘에는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조낸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럴려면 쓸때 없이 글이나 끄적일 시간에 콧구멍이나 말끔이 파는게 훨씬 도움이 되겠다. 그럼 이만 파던거나 마저.

   
     

3 comments:

  1. 우연히 들러서 읽고 갑니다. 생각이 깊고 글재주가 좋기까지하네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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