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8, 2011

1막. 그 마지막 밤에

 
 

모든 것은 끝났다. 1막은 끝을 내린다. 지금은 2011년 5월 8일 어버이날. 난 어버이가 계신 곳의 지구 반대편 호스텔에서 홀로 맥주를 마시고 있다.

2010년 3월 뜻을 세우고, 11월 30일 Los Angeles행 비행기에 올라 반년만에 Santiago, Chile에 도착했다. 시간은 경계없이 흘러가는 것인데 우리가 애써 년월일시 해가며 경계를 세우는 것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적정단위로 끊어서 기억하고 감상하기 위한 것이다. 어제의 나는 모터싸이클 여행자 였고, 내일의 나는 다시금 전업 아들이 된다. 그래서 이토록 자명한 시간의 경계에 칼날을 들이대 어제까지의 역사를 1막이라 부르기로 했다. 내가 쓰고, 내가 공부하는 나의 역사니. 뭐 내맘이지. 1막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생각이고, 말을 아낄 생각이다. 너무 많은 걸 얘기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말할수 없게 되니. 생~~각~~~하고, 글로 쓸 생각이다. 술은 많으니까.



답답했던건,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나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 정도와 난 굶주린 짐승 마냥 여행 경비를 마련하고 도움 받을 곳을 찾으로 돌아다녔다. 아침엔 늦잠을 자고 점심엔 순대국을 먹고, 저녁엔 양념통닭을 먹고 비오는 저녁 도서관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했던 기억이 난다. 배만 부르고 무기력한 하루였다. 아무도 우리의 포부를 믿어주지 않고 모터싸이클, 장비, 여행경비. 모든것이 요원해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법대 후문 언덕길을 보며 '언젠가'  꼭 이 길 같은아메리카의 초원을 가로지르는 상상을 했다.

몇달이 지나지 않아 그 '언젠가'는 일상이 되었고 난 멍한 눈빛의 무표정한 운전병이 되었다. 엉덩이가 아팠고,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웃음은 정말 사소한 의외의 것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막 한가데에서 힘을 합쳐 고장난 모터싸이클을 고쳤을 때, 12시간의 주행을 마친 서로의 모습이 어떤 여행잡지에서도 보지 못했을 만큼 구질구질할 때, 이쁜여자가 지나가서 동시에 걸음이 느려질 때, 스테이크가 젠장할 너무 맛있을 때, 따뜻한 물 잘나올 때. 

Arica, Chile의 바닷가를 걸을 때 근사한 항해사의 동상을 봤다.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던 간에 그거랑 그의 행복이랑은 별개의 문제였을 것이다. 어쩌면 동상을 만들 구리를 채굴하던 광부가 그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았을 지도 모른다. 암튼 내가 동상의 주인공이 되던, 동상 만들 구리를 캐는 광부가 되던. 나의 행복은 별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용현석은 어쩃든 미래의 목표를 보고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목표의 성취가 나를 계속 웃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건 놀랍고도 기분나쁜 진실이다. 그래서 앞날의 종착지를 동경함과 동시에, 지금 내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아둥바둥 노력할 생각이다. 부모님과 손잡고 산책도 자주하고 애교도 부려볼 계획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참고마운 친구들한테 선물도 이것저것 줘야겠다. 여자친구도 더 이뻐하고 잘해줘야겠다. 아 그런데 여자친구 없구나 ㅋㅋㅋ 암튼.



기분 좋은 건,

결과가 가라사대 우리는 존나 위대하고 너희는 존나 병신이었다는 거다. 내가 나의 목표와 비젼을 이야기 했을때 다들 안된다고 생각하고 왜안될지를 설명했다. 게으른 배불뚝이 아저씨, 겁많은 샌님, 깐깐한 잔소리 쟁이.

사람들은 안된다고 했고, 우리는 되게 할거라고 했다. 사람들은 과거에 그런적이 없다고 했고,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믿고 내 삶에서 의미있는 일이니까 반드시 될거라고 했다.

결국 사람들의 충고는 모두 맞는 말이었다. 큰 모터싸이클을 몰아본 경험이 없어서 위험했고, 누구도 선뜻 후원해주지 않았고, 말이 안통해서 힘들었고, 기업가들을 섭외하기 힘들었고, 추웠고, 더웠고, 다시 추웠다. 생각대로 술술 풀리는 쉬운일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가능하다.

멋진 기업가 형아들 만나면서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아니 내 인생을 어디로 흘려야 할지 알게 되었다. 나의 비젼과 목표를 주위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어떤 표정으로 어떤 장애요소를 제시할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ㅎㅎㅎ 웃으면서 그냥 흘려들을 생각이다. 간절히 꿈꾸던걸 이뤄낼 수 있다는건 20000KM에 다다르는 여정동안 내 몸속에 각인되었고, 그 경험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은 계속 왜안되는지를 설명할 거고, 난 졸라 띠꺼운 표정으로 어떻게 되게 할지를 궁리할 생각이다.



어제 정도랑 맥주를 마시며 지난 일정을 회상했다. 모든 일정이 끝났고 내일은 비행기만 타면 된다. 부산가서 아버지와 C1잔을 부딪히며 뼈가 사글사글 씹히는 봄철 도다리 세꼬시를 초장에 듬뿍 찍어 먹기 전까지는 여행이 끝났음을 실감하기 힘들 것 같다. 뭔가 국경 통과 작업을 해야할 것 같고, 모터싸이클을 주차해야할 것 같고, 지도도 봐야 될 것 같고. 기업가한테 메일도 보내야 할 것 같고.

푹쉬면서 차근차근 2막의 시나리오를 설계할 예정이다. 1막에서 좀 도움을 받았으니까 2막에서는 좀 도움 줄 수 있는 내용이면 좋겠다. 1막은 꽤 잘풀렸으니까 2막에서는 제대로 개박살 나봤으면 좋겠다. 1막도 생각해보면 졸라 웃겼는데 2막은 숨도 못쉬게 웃겼으면 좋겠다. 건강히 살아돌아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제 진짜 끝.


  

4 comments:

  1. 현석아 나 온이 형이야 소온

    기억할지 모르겠구나~ 카카오톡에 너 이름이 나오다가

    홈페이지도 가보고 여기까지 오게됐네ㅎ

    하는 일들 잘되길 기도할게~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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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사귀환 축하축하! 이 포스팅을 읽으니 내가 다 흐뭇하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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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같은 용현석인데... 너무다른인생이군요 멋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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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용현석 어쩌다 들어왔는데 너 되게 멋진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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