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4, 2012
입사 전야
이 얼마만에 쓰는 글이냐... 밴드 연습을 마치고 비오는 홍대 밤거리를 추적추적 걸어오고 있으니, 내일이면 진정으로 직딩이가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묘하다.
지난 3월 인터뷰를 보고 입사를 결정했으니 거의 7개월을 특별한 일없이 백수로 지낸 셈이다. 예전 부터 40대 부터는 돈많은 백수를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특별히 할일이 없으면서 부모님께 눈치보이지 않고 빌붙어 지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비슷한 경험이었다. 세상을 다가진 듯한 기분, 캠퍼스를 걸어다니면 모든 사람이 나만 보는 듯한 허세심은 잠시였다. 역시 정말 중요한 것은 가시적 성취보다는, 한 사람을 알아가고 그 인간됨에 매료되는 깊은 사랑을 하는 것, 엄마 아버지 손 꼭잡고 광안리를 거니는 것, 부산친구들과 가을전어를 안주삼아 쌍욕하며 한잔하는 술, 테니스 코트에서 네트를 살짝 넘기는 드라이브를 치는 것, 차가운 새벽의 조깅.. 뭐 이런 사소한 것들 이었다. 내가 좀더 여유 있는 마음과 넉넉한 웃음을 갖게 된건, 아마도 7개월 동안 순간을 음미하는 습관을 갖게 된 연유일 것이다.
차근차근 인생을 돌이켜 보면, 나는 뭔가 '게임이 안될 것 같은 상대와 만나서 박살나고, 이 꽉 물고 연습해서 기어오르다가, 막판에 좀 친해지는' 세팅에서 가장 희열을 느껴왔던 것 같다. 약간은 변태스럽게도ㅋ정도와 돈 한푼 없이 여행준비하면서 '이거 조낸 삽질같은데, 일단 갈때까지 가보자' 뭐 이런 마인드로 창원공장을 찾아갈 때 느꼈던 그런 찔끔찔끔한 기분. 오늘밤도 그렇게 찔끔찔끔 하는 것이 꼭 비슷한 기분이다.
내일 출근할 가방과 수트 그리고 구두를 챙겨 보니 출근길에 오를 내 모습이 TV 드라마에서 본 듯 익숙하다. value도 좋고, learning도 좋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색깔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부 녹아들되, 내것 하나만은 잃지 않기. 똑똑해지고 일 잘해 지는 것도 좋지만, 2006년 11월 기말고사 기간에 홀연히 짐을 싸서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나의 우아한 그러나 막되먹은 마음가짐은 꼭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첫 출근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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