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라 고등학교 동창, 대학 동창들과의 송년회 모임이 많다. 인생의 한 시기에는 같은반, 동기라는 울타리 하에 매일 같이 보던 친구들을 이제 매년 연말에 보게 된다. 그간 살아온 소식을 전하다 보면 우리 또래의 관심사는 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1. 재미있고 보상이 적절한 평생할만한 일을 찾았는가? 2. 평생 함께 하고 싶은 동반자를 찾았는가? 그래서 누구는 만나자 마자. 연애하니. 직장은 어때등의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그 둘에 대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간 30년간 평생할 일과 평생함께할 사람을 찾기 위해 교실에서 도서관에서 일터에서 술자리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켜왔는지도 모른다. 두가지에 비추어 보면 나는 70점즘 되려나?
올해 연말은 20대의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더욱 감회가 새롭다. 오피스 연말 휴가를 이용해 부산에 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와 달맞이 고개에 있는 사우나에 갔다. 바닷가쪽이 통유리로 된 전망이 좋은 온탕을 갖고 있다. 해질녘이 되니 목욕탕 내부로 햇빛이 따가와 그늘을 찾아 숨는데 문득 올해의 마지막, 20대의 마지막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20분 넘게 해져가는 풍경을 보았다. 일몰은 늘 그렇듯 참 더디게 움직이다가 마지막에는 쏜살같이 사라진다. 새로산 치약처럼 시간이 넘치던 나의 20대 초반과 중반인듯 끝나 버린 나의 20대 후반처럼. 해진 뒤 땀을 뻘뻘 흘리며 온탕을 나가는데 목욕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핵폭발이라도 있듯이 일몰 풍경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온몸에 동물들이 뛰노는 조폭 형아도, 대머리 아저씨도, 그리고 바가지를 포개서 잠을 청하는 뚱보 아저씨도.
낮에는 신년 다이어리에 20대에 잘했다고 생각한 10가지와 후회스러운 10가지를 적어보았다. 쓰고 보니 명확한 공통점들이 있었다. 잘했다고 생각한 10가지는 대부분 '당시에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떤 직관 혹은 끌림으로 인해 용기내서 시작하고 최선을 다했던 것' 혹은 '한번 형성된 뒤로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큰 영향을 미친 습관을 유지한 것' 이었다. 전자가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나던 대범함과 BCG에서 좀비가 될때 까지 일했던 절박함이었다면, 후자는 독서. 술담배를 멀리하는 것, 꾸준한 운동, 진실된 인간관계 등이다. 후회스러운 10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고 싶은데 말만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거나 All-in 하지 않은 것'과 '지금 여기에서 즐거움을 찾고 당장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점'이다. 거기에는 게으르고, 재고, 불필요한 걱정이 과도하게 많았던 내모습이 해당한다. 결국은 2025년에 30대를 돌이켜봤을 때 후회스러운 부분을 줄이려고 하면 '좋은 습관을 키워가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즐긴다'는 모토를 마음에 새겨야 겠다.
가끔 내 인생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작품일지를 생각해본다. 20대의 장면들은 늘 아름답고, 품위 있고, 성숙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때로는 멍청했고, 이기적이 었으며, 조급했다. 하지만, 감독의 자기애가 투영되었을수도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다시 돌이켜 보고 싶은 명장면이 많았다. 엄청난 흥행작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매니아 층이 생길만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만족한다.
일신에 변화가 많을 2015년도. 20대 보다 훨씬 Scale이 크고 흥미진진할 30대도. 잔뜩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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